주제문

건축, 사라진 근대를 만나다. MISSING LINK: lost architecture(s)

건축, 사라진 근대를 만나다.

“현대가 시작될 무렵의 상황을 상상하기 위해 간단하지만 널리 알려진 두 개념축을 마련할 수 있다. 그 하나는 '나(주체)'와 '나에게 다가오는 다른 것(타자)'이며, 다른 하나는 '새로운 좋은 것(현대, 서구)'과 낡은 나쁜 것(봉건, 전통)'이라는 개념이다. 그 두 가지 각기 다른 줄기는 서로 교차하면서 여러가지의 가능한 패러다임을 형성한다. 예를 들면 '낡은 나'와 새로운 남'을 가정하면 이에 대응하는 '나쁜 나'와 '좋은 남'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며, 이런 공식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듯이 필연적인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온다. ”
-김진송,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그 많던 근대(건축)은 어디로 갔을까

근대가 온 순간을 기억하는가. 서구의 근대가 외부의 강력한 강제력으로 우리에게 개입하면서, 근대는 ‘계몽’의 패러다임이 되었다. 우리보다 잘살고 발전된 나라 이야기가 마치 그것만이 유의미한 것인 양 ‘세상물정’을 대신했다. 세상물정 모르는 ‘오래된 우리’는 딱한 처지다. 당장 어떻게 뭐라도 해야 할, 혁신과 개조의 대상에 불과했다. 타자들이 향유하는 ‘그들의’ 모던이 사회에 내재한 요인과 조건이 초래한 일상 속 현상이었다면 우리에게는 욕망을 구체화해주는 지향점이자 구호가 되었다. 이는 다시 화살이 되어 자강론이나 실력 양성론과 같은 이름으로 우리 내부에서 미몽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고 판단한 이들을 타자화하고, 강력한 압력을 행사하는 장치로 작동했다.

일제강점기에 근대는 내재적 개화를 원하지 않던 이들에 의해 좌절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하지만 이때 형성된 근대와 민족주의의 결합은 1960년대 현대로 넘어가는 시기에도 재현되었다. 그리고 민족의 부흥에 가슴 뛰던 모더니스트들이 열등감에 시달리는 모순적 상황도 반복되었다. 민족의 이름으로 현대를 이성과 과학, 풍요와 발전으로 구체화하고 충분한 성과를 이뤘다. 하지만 차용에 빚지면서 만들어낸 현대는, 종국에 자아 정체감의 분열을 초래했다. 미개한 내부의 타자들을 바라볼 때 치밀어오르는 열패감 역시 고조되었다. 자긍심으로 자괴감을 억누르면서, 발전을 위한 초극의지는 자기부정을 넘어 자기혐오로 이행되었다. 이제 신박하고 새롭지 않은 모든 것들이 부정의 대상이 되었다. 일시성이 일상성을 지배했다. 어떤 현대도 한때일 뿐이다. 그렇게 우리의 근대, 그리고 근대 시기의 건축물들은 제 수명을 못 채우고 사라지고 있다.



❚미씽 링크, 새로운 연결에 의한 주체적 수복

미씽 링크(missing link)는 읽어버린 고리로 종종 언급되는 개념으로, 생물이 진화할 때 중간과정이나 과도기적 모습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있을 법하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화석을 말한다. 미씽 링크는 과거와 현재의 넓은 간극을 좁히는 징검돌 역할을 하면서 변화과정을 추정할 수 있게 한다. 간단히 말하면 현대의 공룡인 새와 기존 공룡 사이(정도에 있었을 거라 보이는) 깃털 공룡이나, 시조새가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추정적 개념임에도, 미씽 링크는 진화과정을 실증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이 개념을 건축과 도시의 차원으로 확장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근대의 도시와 건축은 끊임없이 화석으로 밀려나면서, 경제적 사회적 요인에 의해 강제적으로 미씽 링크가 되는 상황은 아닐까. 위기에 처해 있거나 이미 미씽 링크가 된 작업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2022년 대한민국 건축문화제 기획전시는 사라졌거나 크게 달라지게 될 근대건축을 미씽링크 삼아 화두를 제시한다.

여기에 있는 그림, 도면, 설명, 모형, 음악은 실제로 그러했던 것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관람자는 진실과 상상의 모호함 사이에서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우리의 오늘과, 여기까지 연결된 이력을 추정해야 한다. 수복하되 복원하지 않는다. 근대건축의 유효함은 자랑스러운 과거이어서가 아니라 각자의 오늘을 정립할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주체적으로 과거의 편린이 만들어낸 징검다리를 건너 현재를 정립하는 과정을 거칠 때, 우리는 비로소 현대인이 된다. 그제서야 온전히 현대의 건축과 도시 안에서 삶의 기억과 의의를 체감하며 일상으로서의 현대를 향유할 수 있다. 이 곳에서의 체험이 이를 위한 유의한 계기를 제공하기를 기대한다.

2022 대한민국건축문화제

한국건축가협회 회장: 천의영
한국건축가협회 대구경북건축가회장: 이한호
집행위원장: 한영근 한국건축가협회 수석부회장, 박상민 한국건축가협회 대구경북건축가회 수석부회장